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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아랍 중동과 이슬람 세계

최종 수정일: 2024년 11월 12일

Joseph Kwon(편집위원)



서론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들에 대한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1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 전쟁이 예멘 후티반군과 레바논 헤즈볼라로 확장되고, 이란과의 직접적인 공습이 오가며 중동 지역 전체의 긴장이 커지고 있다.

이 혼란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그리고 직접으로 연결된 레바논, 예멘, 이란을 뛰어 넘어 전 중동 국가들이 사실상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중동 지역 전체의 혼란은 전 이슬람권에 중요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고, 이 메세지는 SNS를 통해 빛의 속도로 전달되며 이슬람권 전체에 대해서 다양한 질문과 도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 질문과 도전은 사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이슬람 세계의 고뇌에 대해서 이번 전쟁은 앞으로 이슬람 세계 전체에 중대한 변화를 가지 올 것이다.


앞으로 중동과 이슬람권 전체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선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이슬람 세계가 고뇌한 내용과 투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식민주의와 근대 개혁 운동(19세기 말~20세기 초)

19세기에 시작된 유럽 식민주의는 무슬림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북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등 무슬림이 다수인 식민지 지역은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격변을 겪었다. 유럽 ​​강대국들은 새로운 통치 시스템과 경제 구조를 도입하여 전통적인 이슬람 제도와 문화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 무슬림의 정체성 혹은 무슬림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뇌가 시작되었다.


식민주의에 대한 대응으로 다양한 이슬람 개혁 운동이 등장하여 초기 이슬람의 "순수한" 관습으로의 복귀를 추구하는 동시에 근대성을 수용하는 방향이 제시되었다. 자말 앗딘 알아프가니, 무함마드 압두, 라시드 리다와 같은 사상가들은 이슬람이 현대 과학, 이성 및 진보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슬람 모더니즘을 주장했다. 그들의 목표는 식민지 영향력에 저항하고 이슬람 가치를 유지하면서 교육과 법률을 현대화함으로써 이슬람 사회가 내부로부터 개혁하도록 추구하는 것이었다.


2. 정치적 ​​이슬람과 민족주의의 부상(20세기 중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붕괴된 후 터키, 이집트 등 대부분의 이슬람 세계에서 세속적인 민족 국가가 설립되면서 이슬람 세계에서 근대적 국가모델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이 등장했다. 특히 아타튀르크의 터키, 가말 압델 나세르의 이집트와 같은 국가에서는 세속적 근대 민족주의가 공공 생활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을 줄이고 현대적이고 세속적인 통치를 추구하려고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슬람 보수주의자들과 세속 엘리트들 사이에 긴장을 조성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1928년 이집트의 하산 알 반나가 창설한 무슬림 형제단과 같은 단체들은 이슬람 법(샤리아)에 따라 통치되는 이슬람 국가의 설립을 촉구했다. 무슬림 형제단의 비전은 이슬람이 정치, 법률, 사회의 기준으로 운영되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슬람주의라고도 알려진 정치적 ​​이슬람의 시작이었다. 정치적 이슬람은 서구식 세속주의에 도전하고 이슬람 통치를 통해 이슬람 세계에 대안을 제안하고 실천하는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고, 이러한 개념 자체가 신실한 무슬림에게 매력적인 해답이었다.


3. 이슬람 부흥주의와 보수주의(20세기 후반)

20세기 후반에는 세속적 민족주의 운동의 실패,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환멸, 경제적 도전 등 사회, 정치,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보수적인 이슬람 가치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1979년 이란 혁명과 같은 사건으로 인해 이슬람 원칙이 통치에 명시적으로 포함된 신권 국가가 설립되었다. 이 혁명은 무슬림 세계, 특히 시아파 무슬림과 수니파 사이에서 유사한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 머니 덕분에 두각을 나타낸 금욕적인 이슬람 형태인 와하비즘의 등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와하비 교리에 대한 엄격한 준수를 장려하는 모스크, 마드라사(종교 학교) 및 이슬람 자선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이슬람 세계에 이슬람에 대한 보수적인 해석을 수출했다.


이 기간 동안 법률 및 교육 시스템을 "이슬람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던 파키스탄, 수단,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국가에서는 이슬람 율법(샤리아)의 영향력이 더욱 두드러졌다. 또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1979) 또한 이슬람 저항 운동을 촉진하여 알카에다를 포함한 극단적 무장 지하드 단체를 탄생시켰다.


4. 세계화와 9/11의 영향(21세기 초)

21세기에는 특히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는 전세계적으로 확장되었다. 알카에다가 자행한 공격으로 이슬람 테러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고, 특히 서구에서 이슬람의 폭력, 테러, 극단주의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었다. 그 결과, 이슬람 포비아와 같은 이슬람 혐오증과 차별, 그리고 두려움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여 무슬림 지도자와 학자들은 이슬람의 평화로운 가르침을 강조하고 종교 간 대화와 중용을 장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동시에,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과 이라크 전쟁(2003)은 이슬람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반서구 정서를 촉발했고, 급기야 2010년대 이슬람 국가(ISIS)와 같은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전투적인 지하디의 급증으로 이어졌고, 이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특히 시리아와 이라크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5. 오늘날 동향

오늘날 이슬람교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며, 무슬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 문화와 현대 현실에 이슬람 신앙을 적응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무슬림 지식인과 학자들 사이에서 전통적인 이슬람 가르침을 민주주의, 인권, 동성결혼과 같은 현대적 가치에 비추어 재해석하려는 진보적 움직임까지 있다.

또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무슬림이 신앙에 참여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채널을 통해 온건파와 극단주의적 견해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무슬림이 다수인 일부 국가에서는 이슬람과 세속주의 사이에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튀니지 및 터키와 같은 국가에서는 정치에서 이슬람의 역할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이 있다.


결론

중세 시대까지 이슬람 세계는 같은 이슬람 종교 안에서 정치 시스템만 변경되는 구조였다. 즉 이슬람 자체는 매우 안정적인 사상의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슬람 세계는 근대에 접어들며 서구 열강의 거대한 도전 앞에서 이슬람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이슬람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끝없이 찾아왔다.


초기 이슬람 리더들은 서구의 근대적 교육, 정치, 과학 등을 받아들이면서 이슬람의 가치를 추구했다.

중동에서 민족주의와 세속국가 모델이 만들어지며, 종교와 세속이 분리되는 정책을 추진하려 했으나, 여기서 이슬람이 가진 태생적인 딜레마가 시작된다.

대부분 종교는 기본적으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만 이슬람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종교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반적인 근대국가 모델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이후 딜레마가 지속된다. 근대의 도전, 즉 정체성의 혼란 앞에서 대부분 종교들은 결국 경전과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리더십을 잡게 된다.

그리고 이슬람을 제외한 대부분 종교는 이러한 순수한 종교 근본주의 운동이 자연스럽게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개념으로 발전했지만 이슬람의 근본주의 운동은 더욱 강력한 정치투쟁운동으로 바뀌어 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거기에 부족주의와 집단 패거리 문화가 기반이 된 이슬람 정서에서 만들어진 중동 아랍의 근대 민족주의 국가들은 독재적인 정치 시스템을 기반으로 리더들의 부패로 무슬림들에게 실망감과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또한,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그리고 그 이후 4차례에 걸친 중동 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의 패배는 명예를 중시하는 이슬람 정서에 깊은 불명예로 남아있다.

냉전이 끝나며 이데올로기 대립이 끝나며 개인주의, 자유, 민주, 자본주의와 같은 글로벌 가치에 대한 이슬람 문명의 대응은 결국 알카에다의 2001년 9/11테러를 시작으로 2010년대 이슬람국가(ISIS)까지 거대한 급진 이슬람 정치운동의 실험이 중동 아랍권 전역에 있었다.


그리고 이 급진 이슬람 정치운동의 도전은 이슬람국가(ISIS)의 만행으로 일반 무슬림에게까지 정서적 반감을 가져왔고, ISIS와 같은 급진 이슬람 세력에 대한 전세계적 반IS 연대를 통해 급진 이슬람 리더십 그룹에 대한 정밀 타격으로 급진 이슬람 조직은 급속히 와해되었다.

사실상 이슬람 세계에서 영향력과 조직력이 남아있는 급진 이슬람 세력은 하마스, 헤즈볼라, 이란, 후티 반군과 같은 세력이다. 그리고 이렇게 마지막 남은 급진 이슬람 정치운동이 2023년 10월 7일 전쟁으로 성공과 실패의 마지막 실험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점점 실패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갑자기 이슬람 급진주의를 개인이 받아들이고, 개인적인 테러 등을 할 수 있으나 조직적인 급진 정치 운동은 매우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다시 이슬람 세계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고뇌를 시작하게 될 것이고, 이 고뇌는 이전과 다른 이슬람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슬람의 가장 근본적인 근거인 꾸란을 기반으로 도전한 급진 이슬람 정치 운동이 실패한 것은 사실상 이슬람에는 지금 세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논리적 결론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이슬람 세계가 진정한 진리를 찾으려는 목마름으로 연결될 수 있다. 거대한 영적 갈증 속에 있는 이슬람 세계 가운데, 진정한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복음의 일꾼과 함께 세계 교회의 준비와 집중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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